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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ung Joong KIM CEO of DiYPRO Co. & Rotterdam School of Management MBA 2012 kim.diypr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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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엔 ‘빨대 정수기’ 우리에겐?

식수가 부족한 아프리카 마을이 있다. 선진국 기술진이 찾아가 지하수 퍼 올릴 전기펌프를 설치해줬다. 그런데 이 펌프를 매일 돌릴 전기가 없다면? 펌프가 고장 났을 때 갈아 끼울 부품이 없다면?

아프리카 남서부 나미비아의 사막 마을에는 허공을 향해 대형 그물이 쳐져 있다. 이 그물은 새벽마다 안개에 젖고, 그렇게 맺힌 물방울이 파이프를 타고 흘러내려 주민들이 그날 먹을 식수가 된다.

전 기펌프는 그물에 비하면 ‘첨단기술’이지만 이 마을에선 그물이 더 현실적이고 유용하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이 그물 같은 기술을 일컫는 용어다. 큰 돈 들지 않고, 누구나 쉽게 배워 쓸 수 있고, 그것을 쓰게 될 사람들의 사정에 맞는 ‘적정한 기술’. 첨단기술은 항상 전체 인구 중 구매력 있는 10%를 위해 개발된다, 나머지 90%는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2009년 6월 대전 한밭대학교에 ‘적정기술연구소’가 생겼다. 같은 해 9월 사단법인 ‘나눔과 기술’이 출범했고, 12월엔 ‘국경 없는 과학기술연구회’가 발족했다. 모두 적정기술을 연구하는 국내 공학자들의 모임이다. 다음 주엔 ‘소외된 90%를 위한 적정기술 포럼’이 열린다. 우리나라 공대 교수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적정기술연구소장인 한밭대 화학공학과 홍성욱(46) 교수를 19일 만났다.

-2009년에 적정기술 연구단체가 세 개나 출범했더군요.

“시작은 2007년이에요. 미국 뉴욕의 쿠퍼 휴잇 디자인박물관에서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other 90%)’ 전시회가 열렸어요. 적정기술 제품과 아이디어를 소개하는 전시회였죠. 포항공대 장수영 교수님 제자가 뉴욕에서 전시회를 보고 카탈로그를 보내왔대요. 장 교수님이 제가 속한 공학자들 모임에 그걸 가져왔어요. 그때 적정기술이란 걸 처음 접했고, 생소한 개념에 다들 무릎을 쳤어요.”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던 거죠?

“과 학을 하면서 막연한 콤플렉스 같은 게 있었어요. 의사나 선교사들은 배운 걸 직접 사람들을 위해 쓰는데, 과학은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것 같았거든요. 적정기술은 좀 더 직접적인 접근법이죠. 국내에서 이걸 해보려고 저희 모임에서 대학생들 상대로 2008년 ‘소외된 90%를 위한 공학설계 아카데미’를 개최하고, 2009년 적정기술 경진대회를 열었어요. 둘 다 해마다 하고 있어요. 전국 공대 교수들이 모이는 공학교육학회에서도 소개했고요. 그러면서 본격적인 연구단체가 만들어진 겁니다.”

-적정기술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뭘까요?

“실 험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기술입니다. 가장 유명한 게 1993년에 나온 ‘큐(Q) 드럼’일 거예요. 아프리카 아이들은 매일 물 길으러 몇 시간씩 걸어 다니죠. 기껏해야 10ℓ 물통밖에 못 드니까 시간이 많이 걸려요. 큐 드럼은 드럼통 같은 물통인데 도넛처럼 가운데 구멍이 있고, 여기로 줄을 연결해서 굴리며 운반합니다. 아이들도 50ℓ 물통을 손쉽게 다뤄요. 물 긷는 시간이 줄어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 거예요. 이런 아이디어는 현지 사정을 모르면 나올 수 없는 거죠. 카메룬에는 ‘팟인팟 냉장고(Pot-in-Pot cooler)’가 보급됐어요. 주민들이 쓰는 큰 항아리 안에 작은 항아리를 넣고 그 사이 빈 공간을 모래와 물로 채워요. 물이 증발하면서 작은 항아리 안의 열을 빼앗아서 야채나 과일을 오래 보관할 수 있죠. 2, 3일이면 상하던 토마토가 3주까지 보존돼서 농부들 수입이 늘었어요. 역시 현지 주민들에게 필요한 걸 찾아내서 그곳에 있는 재료로 만든 겁니다.”

그 는 적정기술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로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영국의 값싼 직물이 인도 시장을 장악하자 간디는 직접 물레를 돌려 실을 뽑고 옷을 만드는 운동을 벌였다. 인도 경제가 선진기술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을 인도인들이 할 수 있는 ‘적정한 기술’로 막으려 했다.

독일 태생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는 1960년대 아시아를 여행하며 간디 등의 삶에 영향을 받았다.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1973년)에서 선진국의 거대기술보다 값싸고 소박하지만 저개발국 토착기술보다는 훨씬 우수한 ‘중간기술’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이는 적정기술 운동의 토대가 됐다.

-이후 적정기술 운동은 어떻게 전개됐나요?

“슈 마허의 주장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사람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에요. 백악관에까지 초청해서 경청했습니다. 당시 세계는 오일 쇼크를 만났어요. 카터는 미국 저소득 가정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국립적정기술센터(NCAT)를 설립했어요. 캘리포니아에는 아예 주 정부에 적정기술국이란 부서가 만들어지기도 했고요.”

-가장 부유한 나라가 적정기술을 정책에 도입했다는 건데.

“그 렇죠. 미국에도 분명히 극빈층이 존재하고 그들은 첨단기술, 거대기술에서 소외돼 있으니까. 1981년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사라지긴 했지만요. 이후 민간 운동이 됐죠. 최근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때 적정기술이 활용됐습니다. 수재민들이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폭풍에 부서진 건물 잔해에서 나무를 재활용해 가구를 만든 거죠. 텍사스대학 교수와 학생들이 주도했는데 워크숍까지 열어서 주민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케 했어요.”

-국내에선 어떤 기술이 연구됐나요?

“주 로 대안문화운동이나 환경운동에 적정기술 개념이 사용되다가 공학도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실제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현장에 적용된 우리나라 1호 적정기술은 ‘G세이버’란 축열기예요. 몽골과기대 김만갑 교수가 개발했는데 몽골인들이 게르(양털로 지붕을 덮은 전통가옥)에서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고안한 겁니다. 연료가 부족해서 유연탄 원석과 나무, 폐타이어 같은 걸 때기 때문에 기존 난로는 매연이 심하고 열효율도 떨어지고 건강 문제도 심각했어요. 난로의 연통에 축열기를 달아서 유연탄이 충분히 연소되고 열도 오래 보존되게 만든 겁니다. 지난해 100대를 보급했고, 목표는 1만대예요.”

-적정기술연구소에선 뭘 만들었죠?

“제 가 참여한 건 숯이에요. 카리브해의 아이티는 매년 허리케인 재난을 당하는데, 이게 나무가 없어서 더 심해요. 연료가 없으니까 다들 나무 베어다 땔감으로 쓰는 통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에이미 스미스 교수가 2003년 학생들과 아이티에 가서 사탕수수로 숯 만드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사탕수수에서 설탕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를 드럼통에 넣고 태워서 탄화시킨 다음 식물성 접착물질과 섞어 압축하면 친환경 숯이 돼요. 저는 굿네이버스, 나눔과 기술, 특허청과 함께 아프리카 차드 환경에 맞는 숯 개발 작업에 참여했어요. 사탕수수 대신 옥수숫대나 수숫대를 쓰고 압축 방식을 개선해서 좀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게 했습니다. 지난해 차드에 가서 현지 실험까지 마쳤어요.”

-적정기술 경진대회에선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왔나요?

“우리 학교 학생들이 출품했던 F-eliminator(불소제거장치)란 간이정수기가 1회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인도를 대상으로 연구한 제품이에요. 인도 일부 지방에는 우물물에 불소가 많이 함유돼 있어요. 2ppm 이하면 충치 예방에 도움이 되는데, 7ppm이 넘어서 장기간 마시면 조로(早老) 현상이 옵니다.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찾다가 게 껍질에 착안한 거예요. 게 껍질을 빻아서 필터를 만들고 물을 투과시키면 7ppm이 0.2ppm까지 떨어지더군요. 제품화를 위해 계속 연구 중입니다.”

적 정기술연구소는 오는 25일 ‘소외된 90%를 위한 적정기술 포럼’을 주최한다. 적정기술을 활용한 사회공헌, 더 많은 사람을 위한 디자인, 적정기술과 녹색 경제 등이 토론 주제다. 홍 교수는 이 포럼을 매달 열 계획이라고 했다. 다음 학기부터는 대학원 과정에 ‘적정기술’이란 과목도 개설한다.

-이런 일을 하는 목표가 뭡니까?

“요 즘 우리나라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와 3D TV가 각광을 받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아요. 기술의 발전에서 소외되는 사람은 우리 곁에도 많이 있습니다. 사회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진다니까 이런 소외 현상도 더 심각해지겠죠. 적정기술이 아프리카만을 위한 것일까요? 어찌 보면 우리에게 더 필요할 수도 있어요. 이렇게 연구하고 알리고 토론하다 보면 한국형 적정기술이 나오겠죠.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노인들 을 위한 기술이 나와야 하고, 농업이 위축될수록 농촌을 위한 기술이 필요하고, 기름값이 오를수록 저소득층을 위한 에너지 기술이 요구될 겁니다. 그걸 해보려는 거죠. 제가 못하면 다른 학자들이 할 테고요. 벌써 학생들 사이에도 적정기술 연구동아리가 꽤 많이 생겼어요.”

대전=태원준 기자, 정부경 인턴기자 wjtae@kmib.co.k
posted by 댄디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