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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ung Joong KIM CEO of DiYPRO Co. & Rotterdam School of Management MBA 2012 kim.diypr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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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1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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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1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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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28. 21:01 댄디's 아이디어
소위 80:20의 법칙이라 불리는 파레토의 법칙은 참 많은 것들에 들어맞는 이론이다.
에너지 보존법칙은 두말할 나위없는 우리 삶의 기본이 되는 물리법칙이다.
FTA를 한다한들 부의 총량은 변하지 않을것이고 파레토의 법칙 역시 그대로 존재할 것이다.
결국은 한국에서 상위 20%가 되기 위해 고생하던 것을 이제는 미국까지 포함해서 상위 20%에 들도록 노력해야하는 것일뿐일거다.

2010년 US census에 의하면 미국 2인이상 가구 상위 20%의 마지노선이 US $100,065이다. (10%는 $138,923)
2010년 한국 가계동향조사에 의하면 한국 2인이상 가구 상위 20%의 수입은 6951만원이다.
결국 미국과 한국을 합해 상위 20%가 되려면 대략 US $100,065 가량은 벌어야 한다.
posted by 댄디킴
2011. 11. 26.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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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21. 07:01 댄디's 아이디어
살면서 해야하는 일이 참 많이 있다. 하루에도 수십가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무엇을 먼저해야하는가? 라는 질문은 언제나 맞닿뜨리는 일상에서도 몇번씩이고 반복해서 대답해야하는 것이다.
때문에 무의식중에 결정할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우선순위에 대해 확고히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않된다.

나를 이롭게 하는 선택이 있고, 나도 조금 이롭지만 남도 이로울수 있는 선택이 있다.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맞을까? 대부분 첫번째를 선택할거다. 이성적으로 그게 옳다고 말할거다. 하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적어도 내가 아는 1/3 정도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두번째를 선택한다. 사실 두번째 선택에는 사회적 인정을 기대하고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있다. 그래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가? 
첫번째처럼 나를 이롭게 하는 선택을 별다른 고민없이 선택하고 마무리하는 사람은 보통 주변 사람들에게 빈틈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행동들이 오로지 나의 목표 혹은 해야할 일과 잘 정렬되어 있으니 당연하다. 

그럼 무엇이 옳은가? 나는 미련하기는 하지만 두번째와 같이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선택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항상 두번째 경우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내 할일 못하고 남도와주는 사람을 지나치게 바보취급하기 때문에 더욱 선택하기 어렵다.  

우선 내가 할 일을 끝내고 그리고 남도움되는 일도 한다 라 할수도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 할수 있는 일은 수만가지이다. 결국 당신의 닥친 일을 끝내고 나면 다른 당신의 할 일이 있을것이다. 결국 당신이 조금 덜 이익보더라도 남도 좋은 일을 할 기회는 그닥 없을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보는데? 그렇겠지. 하지만 남한테 도움이 될수도 있는데 자기 손해보는게 그렇게 싫은가? 

내가 미련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너 할일 먼저해라."라고 뇌에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마음에서 미련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을.... 
posted by 댄디킴
2011. 4. 27. 06:14 댄디's 아이디어

지금 가장 ‘스마트’한 전략, 멍때리기



[한겨레21] [특집] 온갖 스마트 기기의 홍수 속에 복잡하고 비싸고 산만해지는 삶… 

바쁜 클릭질보다 ‘백일몽’이 기억과 창조에 도움 돼


남자친구는 외출 중이다. K(35)씨와 커피숍에 간 남자친구 J(32)씨는 앉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낸다. 트위터를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한다. ‘앵그리 보드’(얼굴을 찡그려 찍은 사진을 올리는 애플리케이션, 애플리케이션은 이하 ‘앱’)로 사진을 찍는다. 웃긴 사진이 되면, 그제야 대화가 생긴다. “웃기지?” 같이 있으나 같이 있지 않다. 어떤 날은 ‘탈옥’(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게 시스템에 프로그램을 까는 것)하느라 하루 종일 연락이 두절됐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돈도 ‘수억’이다. 지금 스마트폰을 끼운 케이스는 4만5천원이라는 거금을 들인 ‘럭셔리’ 물품이다. 이 케이스를 교환할 때가 됐다며, 쇼핑하러 가면 꼭 휴대전화 매장을 둘러본다. 둘은 결혼이 임박한 커플. 가전제품을 마련하러 가서 J씨는 스마트폰을 꽂아서 음악을 듣는 스피커를 사자고 떼를 썼다. 스마트폰을 꽂아야 완성되는 디자인의 제품이 K씨는 못마땅하다. 술 마시고는 찍은 동영상을 어머니한테 보여줘서 난처해지기도 했다. “어머니, 저보고 못생겼다 못생겼다 하시는데 후회하실 거예요”라는 ‘직설’이 바로 전달됐다. K씨는 J씨의 스마트폰을 던져버리고 싶다. 

옆에 있지만 그리운 사람들

CHJ(34)와 함께 사는 동생 CHY(32)도 외출 중이다. HY씨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만진다. HY씨는 스마트폰 내의 ‘육성 시뮬레이션 앱’을 한다. 그것도 두 가지나. 채소 농장을 하고 동물을 기른다. 때마다 물을 주고 수확을 하고 먹이를 주어야 한다. 주인의 손길이 필요할 때가 되면 스마트폰은 알람을 울린다. 둘이 앉아 술을 마실 때도 어느새 HY씨의 손은 스마트폰에 가 있다. 좋은 말로 여러 번 했다. 그러다 폭발했다. “지금 안 하면 안 돼?” HY씨는 말했다. “지금 안 하면 당근이 썩는단 말이야.” HJ씨는 HY씨의 스마트폰을 빠개버리고 싶다.

‘만인의 행복’은 아니더라도 ‘반인의 행복’은 되는 걸까? K씨와 HJ씨는 불행해도 J씨와 HY씨는 행복하지 않나? 하지만 당사자도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KD(38)씨는 지난해 말 태블릿 PC를 마련했다. 잃어버린 스마트 기기가 못내 그리웠고, 집에서 쓰는 7년 된 노트북을 대체할 수 있다는 기대가 합쳐졌다. 무려 ‘예약’을 걸고 멀리 30분 차를 타고 가서 받아왔다. 태블릿 PC는 훌륭했다. 출퇴근 때 꼭꼭 챙겨갔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는 재미가 추가로 붙었다. 지하철에서 폼나게 꺼냈고, 술자리에서 돌려가며 기능을 시험했다. 완벽한 스케줄러를 찾아 거금도 썼다. 스케줄러와 합쳐서 메모장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할 일’을 간단하게 알려주는 앱도 깔았다. 이 귀여운 놈을 위한 액세서리도 마련했다. ‘거죽’이 크니 가격도 5만원 이상을 호가했다. 타이핑이 어려우니 블루투스 키보드를 지인에게 선물받았다. 10만원. 자연스럽게 세우는 스탠드도 필요했다. 3만5천원. 거금을 들였으니 완벽한 생활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곧 패닉에 빠졌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생활, 일주일에 몇 개 없는 약속과 외울 필요 없는 기획·아이디어는 손으로 쓰는 스탠딩 달력과 휴대전화의 메모장으로 족했다. 태블릿 PC에는 ‘기록’의 필요가 없는 것들을 일부러 만들어 기록하게 되었다. 책을 보기에는 무거웠고, 전자우편으로 보낸 원고를 집에서 수정하기 위해서는 비싼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한 달 뒤 태블릿 PC는 출퇴근을 같이 안 하게 됐다. 그래도 만져줘야 할 것 같았다. 퇴근한 몸을 이끌고 이것저것 다운받고 구동해보며 1시간을 보냈다. 그것마저 한 달이 지나자 하지 않게 됐다. 어떤 보조개도 어떤 주름도 어떤 글자도 어떤 단어도 보지 않고, 트위터도 앨범도 추억까지도 사라졌다. 어느새 귀여운 놈은 징그러운 놈이 되어 있었다. 

‘스마트’해져야 한다. 그것이 ‘시대의 부름’이다. ‘스마트’는 온갖 용어에 붙는 접두어다. ‘스마트 학생복’과 ‘스마트 자전거’의 그것과는 다르다. ‘스마트’란 우선 통신 장치와 컴퓨터의 입출력 장치를 갖춘 기기에 붙는 말이었다. 무선으로 전자우편을 체크하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데, 들고 다닐 수 있게 작다. 이 접두어는 이제 강력한 포용력을 가지고 문어발식 확장을 해나가고 있다. 스마트 복사기는 버튼을 직접 가서 누르지 않아도 통신 장치를 통해 정보를 입력받아 출력이 가능하며, 메모리 리더기를 갖춰 프린트할 수 있음을 뜻한다. ‘복합기’라는 복잡한 이름 대신 ‘스마트’하다고 하자 훨씬 더 세련돼졌다. 비슷한 기능이 있었지만 ‘스마트’일 때보다 강력했던 적은 없다. 

‘스마트’는 생활을 업그레이드해주는 가장 확실한 단어가 됐다. 그리고 모호해졌다. 지하철에는 “한국전력의 스마트그리드가 CO₂ 없는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라고 광고해놓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첨단기술’의 느낌이다. 곰 같은 남편을 스마트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스마트TV’가 제안된다. 어떻게 스마트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추리닝 차림으로 뒹굴거리던 남자는 주름 잘 잡힌 양복을 입고 근사해졌다. 클래식도 ‘스마트 라이프 시대’라는 메일을 보내 홍보한다. 지난해 온라인 쇼핑몰에서 스마트폰은 가장 검색을 많이 한 단어였다. 스마트 오피스, 스마트 디바이스, 스마트 워크, 스마트 모잉…, ‘스마트’는 주문이다. 

‘사용하는 데 어려움 없다’ 16.1% 불과

‘스마트’ 확대의 선봉은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의 사용자 비율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었다(2011년 1월25일 발표, 취업포털 잡코리아 남녀 직장인 744명 대상 설문조사). 지난해 18.2%에서 40.1%로 늘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직장인의 83.6%가 스마트폰을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국내 통신 3사는 올해 말 스마트폰 사용자를 2천만 명으로 늘릴 계획을 잡고 있다. 전 국민의 반이다. 

‘스마트’란 기기가 알아서 해준다는 뜻인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더 많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한 사람은 16.1%에 불과했다. 배터리 소모(65.1%), 복잡한 기능(24.8%), 응용프로그램의 충돌(24.8%), 터치 기능(18.5%), 크기와 무게(7.7%) 등을 사용상의 어려움으로 꼽았다. 

배영희(56)씨는 스마트폰을 버렸다. 휴대전화가 고장나서 남편과 가서 휴대전화를 골랐다. 이전 것과 비슷한 걸로 고르려는 그에게 남편은 “다들 스마트폰 쓰는데 뒤처질 필요 있느냐”며 스마트폰을 권했다. 스마트폰은 너무 예민했다. 밤 12시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일 있느냐”며 깜짝 놀란 목소리였다. “연락 주십시오”라고 적힌 메시지가 친구에게 발송됐다. 예민한 스마트폰이 주인의 의도하지 않은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한 것이다. 무엇보다 노안이 온 눈에 스마트폰 글자는 너무 작았다. 집의 컴퓨터로 하는 전자우편과 인터넷 서핑을, 이 작은 스마트폰이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글자를 보려면 책 읽을 때 쓰는 돋보기를 써야 했다. 특히 차 안에서는 거의 읽을 수 없었다. 마침 설 연휴였다. ‘스마트 스트레스’는 ‘명절 스트레스’보다 더했다. “제 나이 또래에 스마트폰 쓰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동창 모임에서 친구들이 와이파이 연결하고 인터넷이 되네 어쩌네 와글와글 이야기했는데, 결국은 이런 거 복잡하다, 간단한 게 좋다고 입을 맞췄죠.” 스마트폰은 큰딸에게 줘버렸다.

스마트폰이 스트레스를 주는 중요 요인으로 요금 문제도 있다. 남자친구가 ‘외출 중’인 K·J 커플은 1년 전 J씨가 스마트폰으로 바꾸면서 커플요금도 깨졌다. J씨는 7만원에서 10만원, K씨는 6만원에서 9만원으로 요금이 올랐다. 다달이 각자 3만원을 더 내게 됐다. 

지난해 통신서비스 요금이 가구당 10만원을 넘어섰다. 그 주된 이유는 스마트폰 요금 때문이었다(1월 통계청 가계 소비지출 자료). 월평균 통신서비스 요금 13만6682원 중 이동전화요금 지출은 10만3370원이었다. 전체 통신 요금은 2003년 이후 최대치인 4.3% 증가했는데, 이동전화요금은 지난해(9만5259원)보다 8.5% 증가했다. 통계청은 “스마트폰 가입자가 늘어나면서 4만5천원 이상 요금제 가입자가 대폭 증가해서”라고 설명했다. 

‘스마트’가 일으키는 이런 ‘스트레스’는 한 이동전화회사의 캠페인이 됐다. 삼성전자는 최근 ‘하우 투 리브 스마트’(How to live SMART) 캠페인을 시작했다. 아이유의 <좋은 날> 뮤직비디오에 푹 빠진 버스 승객, 정작 같은 버스에 탄 아이유는 못 알아본다. 동영상 다운로드 광고에서는 “그래도 가끔씩은, 동영상을 잠시 끊고 그녀만을 바라보세요”라고 한다. 다른 휴대전화 광고는 “스마트폰도 공부해?”라면서 스마트폰이 ‘어렵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다. 2000년대 초 나온 광고 “새로운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도 지난해 다시 제작됐다. 

산만함에 의한 산만함으로 인한 산만해진 상태

‘스마트’해진 우리는 최신 뉴스를 보면서 전자우편이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고 확인하고, 여러 명과 동시에 문자 대화를 나눈다. 그때마다 하고 있는 일의 흐름이 끊긴다. 컴퓨터에는 창을 여러 개 열어두고 흘러간다. 우리는 링크를 따라 가면서 텍스트 전체를 읽지 못한다.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청림출판 펴냄)에서 우리의 산만한 생활에 경고를 보낸다. “우리 삶에서 산만함은 오랜 시간을 두고 증가해왔지만 인터넷처럼 광범위하고 끈질기게 우리의 관심을 분산시킨 미디어도 없었다. …온라인 생활의 특징인 지속적인 산만함의 상태에 마음 놓고 빠져들 수 있도록 지적인 보호막을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은 우리 조상들이 만족한 것 이상의 산만함을 제공하면서 우리에게 완전한 산만함이라는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게 한다.” “산만함에 의한 산만함으로 인한 산만해진 상태”다.

카는 이런 산만한 생활이 산만한 뇌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불꽃을 일으키며 서로 연결돼야 할 뉴런이 약해지고 해체된다는 것이다. 정재승 카이스트(KAIST)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는 인터넷 사용을 뇌의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면서도 ‘산만함’이 장기기억에 미치는 영향력에서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정보가 들어오면 장기기억으로 넘어가야 할 정보를 놓치게 된다. 잠자면서 장기기억을 강화하듯이, 사람들은 빈둥거리면서 장기기억으로 정보를 넘겨준다. 그런데 끊임없이 트위터를 하면 의미 있는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넘겨주는 게 쉽겠는가.”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정보는 짧게 기억된다(작업기억). 작업기억은 뇌 속에서 장기간 저장되는 기억(장기기억)으로 전환된다. 산만한 생활은 이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작업기억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아주 적다. 7조각 정도다. 최근 주의력결핍증(ADD)이 작업기억의 과부하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바쁘게 이리저리 클릭, 터치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일을 많이 했고 똑똑해진 것이 아니다. 뇌가 사용하는 ‘스마트’한 전략은 ‘멍때리기’다. 최근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마인드> 3·4월호는 ‘백일몽의 힘’을 표지이야기로 다뤘다. 부제는 ‘머릿속의 구름? 그 속에서 창조력을 찾아라’다. 영국 랭커스터대학의 연구자들은 쉬는 시간을 준 뇌가 창조력을 요하는 문제를 더 잘 푼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은 30% 이상의 시간을 ‘멍 때린 채’로 지낸다. 소리 없이 계속해서 속으로 지껄이는 일종의 백일몽 상태를 최근 과학자들은 ‘초기 모드’(Default Mode)로 정의했다. 그때도 인간의 뇌는 절대로 쉬지 않는다. 진화의 결과다. 머리가 멍해졌을 때, 비틀거리는 탐색은 우리가 찾으려 안간힘을 쓸 때는 보지 못했던 것과의 연관을 만들어낸다. 

하늘을 보자, 가끔은

‘유레카’는 목욕탕에서 왔다. 왕이 내준 왕관의 순금을 측정하는 문제를 풀다가 머리를 식히려고 들어간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치며 뛰쳐나왔다. 목욕탕에 스마트폰을 들고 갈 수 없는 법이다.

인터넷 독자에게 한 말씀. 인터넷으로 이 긴 글의 여기까지 읽은 사람? 읽지 않고 마지막으로 왔다 하더라도 당신의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이 원래 그런 거다. 대신 하늘을 보자. 멍 때린 채로. 그래 가끔은. 



깊이 없는 스마트 라이프


인터넷은 달콤한 것만 좋아해


‘스마트한 지식’에 대한 경고도 나오고 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 니콜라스 카는 통합된 만능 기기를 통해 유통되는 지식에서는 양이 질을 몰아낸다고 말한다. 모든 미디어가 디지털화되면서 미디어 간의 경계가 사라진다. 특수 목적의 기기는 만능 기기로 교체된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음악을 듣고 동영상을 보고 인터넷 검색을 한다. 통합된 미디어는 ‘분절화’를 초래한다. 디지털 음원의 곡은 짧게 분해된다. 앨범은 하나의 곡으로 나뉘어 팔리고, 곡의 클라이맥스는 따로 떼어져 벨소리로 울려퍼진다. TV 드라마는 쪼개서 제공되고, 그중에서도 클라이맥스만이 검색 상위에 올라 널리 퍼진다. 긴 오프라인 매체의 글은 인터넷에 적당하지 않다. 댓글놀이 중 ‘기사 안 읽고 여기 온 사람 손 들기’도 있다. 인터넷 매체는 소비자가 많이 클릭하는 조회 수에 따라 비슷한 기사를 반복 생산한다. “접근이 쉬울수록 우리는 짧고 달콤하고, 혼합된 것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타일러 코웬의 말) 

비슷하게 재론 레이니어는 온라인과 결합한 ‘디지털 라이프’가 ‘전체주의’ ‘승자독식 사회’로 이끈다고 말한다(<디지털 휴머니즘>, 에이콘 펴냄). 블로그의 글보다는 블로그들을 모은 사이트(메타 블로그, 매시업)가 인기를 끈다. 글이 익명화되고 재혼합되고 탈맥락화돼가는 데 비해 광고만이 뚜렷하다. 악플러들은 일상생활에서는 결코 나타내지 못할 악마성을 드러낸다. 대한민국의 악플러들이 죽인 연예인은 그 이전 10년의 몇 배에 달할 것이다.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음악과 영상은 그 본래 저자와 예술가에게 돌아가지 못한다. 거대 기업이 중간에서 돈을 가로챈다. “클라우드 컴퓨팅(인터넷 기반의 컴퓨팅)의 중심에는 헤지펀드 프로그래밍이 놓여 있을 것”이라고 레이니어는 말한다.

레이니어는 스마트 시대에 스마트해지는 법으로 몇 가지를 제안한다.

△정말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아니라면 익명으로 글을 올리지 마라.

△위키피디아에 글을 쓰는 데 많은 노력을 쏟기보다는, 자신들이 무엇에 관심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위키 바깥의 사람들을 끌어들이도록 목소리와 표현력을 가다듬는 데 열중하라.

△여느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의 문서 형식으로 담을 수 없는,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을 표현해주는 웹사이트를 직접 만들어라.

△비디오 하나를 만드는 데는 단순히 보는 것보다 100배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가끔씩 그렇게 직접 비디오를 만들어 올려보라.

△몇 주가 걸리더라도, 숙고와 내면의 성찰이 요구되는 블로그 글을 써보라.

△트위터를 쓴다면, 외부의 사소한 사건 대신 자신의 내면 상태를 제대로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하라. 기계처럼, 객관적으로 묘사된 사건들이 나 자신을 규정한다는 믿음은 대단히 위험한 오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참고 문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청림출판 펴냄), <디지털 휴머니즘>(재론 레이니어 지음, 김상현 옮김, 에이콘 펴냄), <스마트워크>(김국현 지음, 한빛미디어 펴냄), ‘Living in a Dream World’ (2011년 3·4월)
posted by 댄디킴
2011. 4. 15. 02:04 댄디's 아이디어
오늘 과거 팀의 동료들로부터 Peer review를 받았다.
본래의 내 행동에 비하면 상당히 참여를 안해서 심지어 애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팀웍이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는 다들 후한 점수를 주었다.
하지만 두가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할것같다.
첫번째는 내가 아무리 Shaper이기는 하지만 마지막의 완성도가 낮은 것은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두번째는 좀더 일반적인 기준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첫번째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확실히 나는 중반까지의 판단이 굉장히 빠르고, 그 판단을 지지하는 실행력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중반 이후에 Detail에 대한 관심과 노력, 심지어 능력까지 부족한게 아닌가 싶다.
개인 사업을 하는 나로서는 나의 이런 단점을 보완해줄수 있는 사람을 고용하면 된다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해결방법은 좀더 중반에서 중후반까지의 완성도를 올리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한다.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냥 노력이 적을뿐인것인가? 그럼 그 노력을 안하는 것은 어디에 쏟아넣는데? 그렇다고 남들보다 훨씬 많이 놀고, 허송세월하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BSM 과정에서 느낀 건 내가 다른 반친구들보다 정말 많이 sustainability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쩜 이게 그동안 내가 시간을 많이 보낸 부분일지도... 각설하고, 나의 이런 점은 한개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 했을때 그 결과물이 다른 사람들의 것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남들에게는 프로페셔널 하지 못하다고까지 비춰질수 있는 부분이다. Finisher 타입의 2인자를 구한다? 이게 과거 내가 생각했던 대안이기는 하다. 어떨까?

두번째는 팀원들의 말처럼 내가 original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때때로 나의 세상에 빠져서 기본적인 요소를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큰그림을 그리는데 너무 내 그림이거나(워낙에 엉뚱해서 다른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 쉽지 않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내맘대로 지나쳐버린다거나 하는 것말이다. 교수가 case를 읽고 생각해보라고 준 질문의 리스트를 보고도 나는 그냥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기본은 하고 다른 unique한 포인트를 더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을 하면서도 이런 행동을 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선 남은 학교 과정동안 기본scheme은 교수들의 질문에 답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그러는 중에 혹은 이후에 나의 아이디어를 더하는 쪽으로 해보자.
posted by 댄디킴
2010. 10. 7. 09:31 댄디's 아이디어
최근 우리 회사에는 기회가 많이 있다.
프레넬 렌즈가 태양광과 관련하여 그리고 LED와 관련하여 많은 각광을 받고 있어서이다.
더군다나 국내에서 프레넬 렌즈를 생산하고 취급하는 곳도 없으니 더더욱이 관심이 집중될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가이다.

아침 신문을 읽던중 이전에 자연채광 개발과 관련하여 미팅을 가졌던 용인의 한 식물공장의 기사를 보며
어째서 기회를 살리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개인적으로 MBA를 준비하며 상당히 중요한 시기이기는 하지만 내가 못한다면 아래의 직원들이
대신할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엉뚱하게도 AAA 건전지 총판건이나 획득하고 몇십만개씩 구비하고 있는게
우리 회사가 나가야하는 길하고 무슨 관계란 말인가...
머리가 복잡하다.....
posted by 댄디킴
2010. 9. 15. 01:33 댄디's 아이디어
성취와 성공은 어찌보면 공통된 것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문득 내가 원하는 MBA 과정을 가게 되었을때 나는 그것을 성공이라고 해야할지 성취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오전에 이외수 선생님의 트윗을 보면서 성공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하였고 또한 방금전에 학교 후배인 선화와 전화를 하다가도 성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매사를 자기입장만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딴에는 사회적으로 성공을 했다고 자처해도 진정한 성공으로는 평가할 만한 가치를 못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의 성공이란 대개, 실패만도 못한 가치를 지닐수 없기 때문이다."
- 이외수 2010년 9월 14일 트위터

진정한 의미의 성공을 했다라면 그게 자신의 입으로 나옴으로 인정이 되는 것일까? 다른 사람의 입과 마음을 빌어 나와야 성공을 한 것이라 조금은 인정이 되는게 아닐까.
하지만 나 역시도 종종 성취를 성공과 동의어로 쓰게 되는거 같다. "그친구 성공했잖아. 회계사 되고 말야."
이런 경우는 성취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지 않을까?
"그 친구는 자기가 원하는 삶을 정말 제대로(성공적으로) 살고 있는거 같아." 이럴때는 좀더 성공이 어울린다.

성공은 어떤 지위, 어떤 소득과 같은 외적인 요소를 얻었음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사례를 표현하기 어렵지만 다소 내적인 요소를 이루어냈음에 어울리는 단어이다.

성취에 있어서는 자신의 입을 빌어 이야기를 할수 있는거라 본다.
반면 성공에 있어서는 타인의 입과 마음을 빌어 이야기를 해야하는 것이다.
posted by 댄디킴
2010. 8. 25. 12:27 댄디's 아이디어
가끔씩 드는 생각이지만
어째서 이런 길을 선택하는지 그리고 어째서 그 때문에 힘들어하는지가 느껴질때면
왜 이렇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때가 있다.

과거의 여자친구의 결혼식의 행복한 사진을 보며 다시 한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댄디킴